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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ds Psychology

영유아발달 연구의 역사적 견해에 대해서

by Sordio 202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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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발달 연구의 역사적 견해

 현대사회에서는 영유아기를 보호와 보살핌을 받으며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 특별한 시기로 봅니다. 이 시기의 경험이 이후 성인으로서의 삶에 중요한 초석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어린 아동에 대한 견해가 늘 현대와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아이들을 바라본 견해와 과학적 발달 연구의 시초입니다.

 

영유아에 대한 과거의 주요 견해

 과거에는 발달 초기인 영유아기나 아동기를 성인기와 별다르게 구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중세에서 근대화 이전까지는 현대사회와 같이 아이를 귀하게 기르거나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는 데 그쳤습니다. 또한 아이가 신체적으로 노동이 가능한 시기부터는 농작물을 수확하거나 수공예기술을 배우게 하는 등 성인의 노동을 대신하도록 했습니다.

1. 고대 유럽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적절한 보살핌과 교육이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플라톤은 이 시기에는 놀이와 음악, 체육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발달시키고 정신을 수양하며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시기 발달에서 놀이와 신체 단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놀이는 인간의 본성에 가장 적합한 운동으로, 영유아에게 5세 정도까지는 자연스러운 놀이를 통해 자신의 본성에 따라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대 유럽에서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건강하지 않거나 불법적으로 태어난 영아를 살해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도 영유아를 심하게 처벌하거나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집안일을 시킬 목적으로 아동을 사고팔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고대 카르타고에서는 영유아를 죽여서 신전에 재물로 바치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이렇게 고대의 몇몇 철학자들이 영유아기의 적절한 보살핌과 교육을 강조했지만, 이 시기 대부분의 영유아나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2. 중세 유럽

 중세 유럽에는 아동복이나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같은 것이 없습니다. 출생 후 걸치는 천을 벗어버리고 옷을 입을 정도로 자라고 나면 성인이 입는 방식으로 똑같이 입고 성인이 하는 오락이나 유희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즉 중세 유럽에서는 아동기를 성인기와 구분되는 특별한 시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아이는 성인과 외형적 크기만 다르다고 생각하며 성인의 축소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중세시대에는 원죄설의 영향으로 영아는 악한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서 악한 성질, 즉 죄를 없애고 구제하는 것을 영유아 양육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간혹 과거 유럽사회에서 아이들을 취약한 존재로 여기고 성인의 책임을 모두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한 기록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의학 관련 기록에 의하면 아이의 특정 질병에 대해 언급이 되며, 12세 이하 아이는 결혼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시기 종교운동에 의해 아이들은 결백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생겼습니다. 성직자들은 아이들의 영혼이 성인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구제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아동의 영적인 복지는 부모의 책임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아이도 경제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았고 아동이 성장하면서 결혼도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따라서 중세의 아이들은 이른 시기에 성인으로 변화되어야 했지만, 성인과는 다르다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 근대 유럽

 16~17세기에서는 농경사회에서 무역경제사회로 전환되었으며, 18세기에는 산업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농장에서 도시로 이주하며 가정 밖에서 물자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서구사회 가정의 기본 역할로 경제적 생존의 수단에서 자녀양육으로 바뀌게 되었고, 부모와 자녀관계에서의 친밀감과 정서적 애착이 높아져갔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아이에 대한 견해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1545년 영국의 의사이자 법률가인 토마스는 '소아학'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이후 기술 발전으로 이 책뿐 아니라 영유아 보살핌에 대한 많은 책들이 배포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17~18세기에는 두 철학자가 아동의 특성 및 교육에 대해 중요한 견해를 제시하게 됩니다. 17세기말 영국의 철학록크는 1690년에 집필한 논문 <인간 이해에 대한 에세이>에서 인간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 대해 언급되었습니다. 록크는 인간이 타고나는 지식이란 없으며, 갓 태어난 영아들은 타블라 라사라며 일컬으며 백지상태라고 보았습니다. 영아가 악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백지와 같은 상태로 태어난다고 봤습니다. 인간이 백지상태로 태어나서 영유아기의 경험을 통해 발달하기 때문에, 아이의 경험이 성인기의 특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생 후 경험이 영아, 유아, 청소년, 성인을 독특한 개체로 조형한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부모와 같은 양육자는 영유아인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녀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영아를 적절히 지도하고 보상과 처벌을 적절히 사용하며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서서히 이런 권위를 완화시켜 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록크는 부모가 자녀의 행동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용적이거나 제한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며 양육에서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록크의 견해들은 현대의 올바른 양육태도와 비슷합니다. 

 

 반면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아이를 '고결한 야만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아동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기는 하지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느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아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존재이고 그 본성이 착하기 때문에, 부모가 영아를 인위적으로 감독하거나 제한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는 정의감과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서서히 자연스럽게 펼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루소는 부모가 자녀의 자연스러운 발달을 억누르지 말고 자녀의 요구에 반응적이고 수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발달에서 영유아 자신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는데, 이런 견해는 능동적인 존재로 아이를 바라보는 현대 관점과 비슷했습니다. 

 

 록크와 루소 모두 아동을 정적인 존재나 성인의 권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발달하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성인은 아동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유아의 양육이나 교육방식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였고, 철학적 논쟁은 과학적 방식을 바탕으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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