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의 시초
철학자들이 영유아 및 아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논쟁한 역사는 길지만, 19세기가 되어서야 과학적으로 영유아발달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와 같은 영유아 연구의 시초는 180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복잡한 주요 이론과 발달에 대한 견해를 체계적으로 종합하는 방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발달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세기말부터는 영유아발달을 연구하며 철학적 접근을 넘어서 체계적 관찰과 실험에 근거하여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 미국과 유럽
다윈은 영유아발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동일한 종 내에서도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개인은 특정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하고 잘 생존하며 자신의 특성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종의 진화적 변화와 인간의 연령과 관련해 나타나는 변화에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많은 과학자들이 아동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영아전기를 작성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아전기의 기록들은 이후 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연구의 초석이 되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연구한 사람들은 주로 생물학이나 의학 같은 자연과학이나 철학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심리학자 비넷은 인간의 주의력과 기억을 평가하도록 여러 과제들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는 이런 과제를 일반 아이들과 정신지체 아이들, 성인 등을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이런 작업들을 바탕으로 현대 지능 검사의 시초가 된 검사를 개발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홀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구에서 질문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들여왔습니다. 홀은 진화론에 근거한 아동발달이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주제에 대해서 아이들의 신념에서 연령에 따라 경향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홀은 아동연구를 위한 연구소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과학적인 학술지를 만들어서 연구자들이 아이발달 연구에 대한 결과를 출판하도록 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프레우드는 영아기의 경험이 성인 행동 패턴과 관련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관심을 모았습니다. 미국의 왓슨은 아동양육 방식에서 보상과 처벌의 적절한 사용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행동주의를 창시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많은 연구소가 아이들과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동의 놀이, 두려움, 갈등, 공격성, 사회성 등에 대해 연구하면서 영유아 및 아동 대상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미국의 영유아발달학회도 조직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지셀은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도 아동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관찰돔을 발명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는 영유아의 연령에 따라 나타나는 행동을 관찰해 기록했는데, 이것은 체계적으로 관찰해서 기록하는 다윈의 영향을 받은 행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2. 한국
한국의 과거 문헌과 기록들을 통해서 전통사회에서는 일찍부터 아동과 성인과 다름을 인지하고 있었고, 발달 특성에 따른 적합한 보살핌과 교육을 위해 노력해 온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세기말부터 근대사회의 격동기와 일제강점기 등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보살핌 이상의 많은 관심을 주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소파 방정환은 아동중심, 아동존중사상으로, 당시 '놈'이나 '아해', '녀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아이에게 '어린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즉 발달 초기인 아동도 청년이나 성인과 같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소파 방정환은 아동을 선한 존재로 보고, 아동의 본래 마음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마음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부모의 예속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며, 창조력을 가진 존재로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아동들이 가진 미성숙이나 '어림'은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크게 자랄 어림',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이라고 보았습니다. 소파 방정환은 조선소년운동협회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대우, 아동노동의 금지, 배우고 놀 수 있는 시설의 구비, 당시 그릇된 아동인식에서의 탈피를 주장하는 등 근대 우리나라의 아동운동에서 선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아이에 관련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63년 '대한가정학회'가 사단 법인체로 인가를 받으며 '대한가정학회지'를 창간하면서 아동학 분야의 연구가 부분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전통적인 양육방법이나 양육 실제에 대한 연구들이 수행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불교와 유교, 도교는 영유아에 대한 관점 등을 포함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종교이자 학문체계입니다. 372년 고구려에 불교가 유입되었으며, 유교의 교육기관인 태학이 설립되게 됩니다. 당시 고분 벽화를 통해 보면 도교 또한 일찍부터 전통사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사회의 불교는 아동을 성인과 같은 주체적 인격을 가진 존재로 봤습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10단계 설에서는 포대기에 누워 있는 갓난아이를 '영아'로, 소꿉놀이하는 시기를 '동자'로 칭하며 성인과 구분했습니다. 영아를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존재로 봤습니다. 출생 후 배움을 통해서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봤습니다. 불교관점에서는 영유아의 출생 전과 후에 부모의 역할도 중요시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는 영유아를 깊이 사랑하고 제어하며 가르쳐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도록 교육시킬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이 하늘에서 부여한 신령스러운 성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보통 각 개인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그 본성을 잃는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욕심을 제거하고 하늘이 부여한 성품을 보존시키고자 교육을 중시하며 일찍부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에 널리 사용됐던 교훈서들의 내용을 보면, 3세에 이르러 올바른 식사습관과 행동예절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나와있습니다. 특히나 일찍부터 남녀를 구분하여 남아와 여아에게 적합한 대답방식이나 의복습관 등을 차별화하여 교육시켰습니다.
도교적 관점에서는 인간이 천지우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연적 존재이며, 영아는 자연의 상징입니다. 갓 나온 신생아의 색이 붉다고 하여 '적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기를 아직 세상의 선악, 시비에 물들지 않은 무심의 존재, 무욕의 존재로 보았습니다. 아기는 몸과 마음이 도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로, 배가 고프면 울고 졸리면 잠을 잘 뿐이지 성인과 같은 의도가 없어서 마음에 흠이 없고 자연에 가까운 도에 충실한 존재로 바라봤습니다. 도교의 교육목표는 자연의 이치대로 천하를 다스리고 몸과 마음을 잘 기르는 것인데, 아기는 이미 자연적 특성을 가지고 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으므로 영아가 가지고 있는 본성과 특성을 해치지 말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교육시켜야 한다고 봤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종교와 시대에 따른 영유아의 본성과 교육에 대한 구체적 견해는 차이가 있지만, 이들 모두 영유아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그리고 부모가 적절한 보살핌과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며, 출생 후뿐만 아니라 출생 전에 태내에서의 교육을 중요시했던 점도 유사한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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