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결심한 계기
23년 나에게는 가장 힘든 해였다. 일도 치이면서 집에서도 마냥 편하지 않았기에 하루 24시간이 마치 가시방석으로 느껴지며 하루도 맘편한 날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자취가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고 간절했다.LH, SH 홈페이지를 매일같이 들어가며 올라오는 공고마다 못 먹어도 일단 고를 외치며 묻고따지지도 않고 자취에 눈돌아간 사람마냥 내가 넣을 수 있는 모든 공고에 지원했다. 그래도 지원한다고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나오는 공고마다 다 지원하며 하루라도 빠르게 나가고 싶어했다.
나는 6-8개월 사이 올라온 공고는 모두 지원을 했다. 등기우편 보내는데 2만원이상은 쓴 것 같다. 이 중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집(평수가 넓고 투룸이었다.) 대기가 152번 순번을 받았다. 비록 직접 본 집은 아니었지만 도면이랑 사진이랑 비교하며 추측하고 가장 컨디션 좋은 집에 합격하길 바랬다. 이게 기분이 묘한게 떨어진 것도 붙은 것도 아닌 대기, 예비번호라서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날 수록 예비는 곧 떨어진거다라고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LH에서 예비를 받게 되면 1~6개월 이내로 각 전형마다 다르지만 예비순번을 인정해주는 기간이 따로 존재한다. SH는 보통 1년 정도 예비를 인정해준다.
한 두달 뒤에 다른 공고에서 예비 3번을 받았다. 그나마 1번과 가까운 숫자여서 기쁘긴 했다. 152번에서 많이 올라왔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이 집도 컨디션이 좋았고 최종 경쟁률 커트컷을 보니 1순위 5점 정도로 꽤 높은 점수로 컷이 되었다. 1년안에 내 앞의 3분이 포기를 하는게 현실적으로 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비 3번 받은 것만해도 감사하다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렸다.
아직 때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 이후에도 올라오는 공고들을 모두 지원했다. 이쯤 되면 내가 뭘 지원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경지가 된다. 왜냐하면 지원해놓고 까먹는게 마음건강에도 좋았다. 하나하나 신경쓰고 일희일비하는것도 큰 감정소모로 느껴졌다. 넣어두고 까먹기가 내 필사기였던 것 같다. 희망 있던 2건은 모두 대기로 당장 나갈 수 없어서 무방이라는 보증금 없이 집 구할 수 있는 재단이 있어서 물어봤더니 가고 싶은 지역은 서비스 불가 지역이란다. 이 정도면 나가지 말라는계시인가 하고 당분간 자취의 마음을 미뤄두기로 하고 현생을 열심히 살았다.
언젠간 나가겠지 마음먹으며 생활하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근무지에서 사정으로 휴업처리 되어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도 생활도 할 말이 많기 때문에 따로 다루기로 하고, 실업급여 끝나기 2달전부터 고모가 편찮으셔서 고모집에서 2개월 정도 지내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참고로 본가와 고모집의 거리는 걸어서 8분 거리) 돌아온지 2-3일 만에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갑자기 문자로 합격통보가 왔다. 이 글을 계속 읽고 계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서류 절차가 복잡하고 일정이 타이트 하다.
합격하고 바로 한 일
문자가 오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어서 어떤 공고를 합격한건지 주소를 물어보고 서류준비나 일정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얼마나 전화를 걸었으면 연락처에 저장이 되어있었을까. 치열하게 공고에 지원했던 그 시기가 떠올랐다. 갑자기 합격이라는 두 글자로 인해 전투력이 상승하고 있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게 없고 언제 어떻게 일이 풀리는지는 가봐야 아는거라 생각해서 마음을 많이 내려둔 상태였는데 하루아침에 꿈에 그리던 그 집에 합격되었다는게 너무 벙찌기도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마음을 비워야 채울 수 있기에 이렇게 경험을 한 거였나 생각이 들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예비 유효기간인 1년이 끝나기 2주전이었다. 합격 발표를 받은 것이. 집에 이름이 써져있던 것도 아닌데 내가 들어가야 했던 것처럼 거짓말처럼 상황이 펼쳐졌다.
일단 전화를 끊고 기뻐하는 것은 집에 들어가서하고 일단 내가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현재 내 상황은 실업급여 마지막 수급을 앞두고 있는, 실질적으로 백수이다.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 대출가능 금액과 나머지 잔금을 확보해야했다. 나는 돈을 많이 모아두기보다는 20대에는 나에게 더 투자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모아놓은 금액이 많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얼마를 모아야하는지 최선이라도 다해보고 안되면 포기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SH에 전화를 걸었다. 정확한 보증금과 월세가 얼마인지, 최대 상호전환이 얼마까지 가능한지 여쭤봤다. 내가 전화를 너무 자주해서 그런지 곧 우편물이 올거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하루하루가 내가 전투력을 모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한 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보증금과 월세를 알아내고 상호전환으로 얼마를 하는 것이 이득인지 계산을 여러번 돌렸다. 은행에 돈을 주든 SH에 돈을 주든 나에게 나가는 돈은 똑같고 그 출처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일단 최대 상호전환하는 것이 나에게는 이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은행 돌며 나를 받아줄 은행을 돌아다니려고 계획했다. 이번 전세 대출 뿐만 아니라 전에도 몇번 받아본 적있었는데 나는 농협과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언제나 받아줄 보장은 없었기에 여기먼저 갔다가 후기 좋은 우리 가보자 하고 갔더니 농협에서 바로 잘 상담해주시고 친절하게 상담해주셔서 그 자리에서 이 곳이라면 나를 새로운 집에 잘 갈 수 있도록 도움 받을 수 있겠다라는 느낌이 딱 왔다.
어려움을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
현재 무직자이기에 받을 수 있는 대출액이 한도가 생각보다 20%정도 적게 나왔다. 또한 금리가 직장인의 2배로 쉽지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꿈에 그리고 그리던 집이다. 무조건 해내야한다. 이 정도 감수도 안하고 나가려고 했다면 안나가는게 낫겠다 싶었다. 목표가 생기니까 눈에 뵈는게 없어졌다. 실업급여 수급 종료되자마자 일자리를 바로 구했고, 그 일들을 가지 않는 날에 빽빽히 채워서 일을 4잡 5잡까지 뛰게 되었다. 4~6월까지 그런 생활을 계속했다. 7~8월까지는 3잡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쉴 틈없는 생활을 이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에 들어오기 위해 여러 일들을 병행하는 데 정작 집에 있을 시간이 많이 없다는게 모순이 있었다.
내 지인들은 내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나는 버텨내야만 했다. 거의 잠자고 일만하는 기계처럼 하다보니 힘들 틈도 없다. 괜찮냐고 물어볼 때면 졸리긴 하지만 아무생각이 없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생각회로도 잘 안돌아갔던 것 같다.
현재는 한가지 일만 하고 있고 내 패턴을 찾기위해 잘 쉬려고 노력 중이다. 인생은 속도전이 아니기에 나처럼 특수한 상황이고 이만큼 간절하다면 하는게 맞지만 내 건강을 다 버려가며 얻어야 하는것은 없다. 건강은 되돌릴 수 없기에.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우니
우선 간절함과 욕심은 한 끗차이이다. 구분이 안갈때도 많다. 그래서 둘다 내려놓고 현생에 충실했다. 그러다가 합격통보를 받게 되었고 그 합격에 충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힘듦을 마다 않고 뛰어들었다. 그러고 이사를 하니 2~3주에 한 번씩 작년에 넣었던 공고에서 합격통보가 쏟아졌다. 3~4군데 정도 합격통보를 더 받았다. 이사 후 받은 첫 합격통보는 직접 우편물을 수령해야한다고 해서 어렵게 받았더니 갑자기 보증금 영수증이 들어있었다. 몇백만원을 내라는데 순간 내가 잔금을 덜 낸건가 싶어서 탈탈 털어냈는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소를 다시 보았더니 내가 새로 공고 넣은 곳 중에 제일 들어가고 싶어했던 집이다. 이게 무슨일인가 싶기도 했다. 작년운이 올해 다 있어서 작년에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었을까. 힘든 순간 뒤에는 맑은 순간이 온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뭐라도 된다 싶었다. 계속 당첨 되는 집들은 지금 집보다 평수가 작지만 뷰와 역세권이 좋은 곳도 있었고 평수가 더 넓은 곳도 있었다. 그런데 욕심이 있으면 옮겨 갔겠지만 이 집을 안정화 시키는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이 들었다. 그저 감사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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